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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

마루치아라치맘 2020. 1. 11. 18:31


작 가: 한나이렌트(1906- 1975)

정치적 억압과 유대인 박해가 심해지던 독일에서 시온주의자들을 위해 활동하다 체포되어 심문은 받은 뒤 1933년 프랑스로 망명, 거기서 수용소에 갇혀 망명, 결국 탈출하여 1941년 미국으로 망명한다. 1951년부터 정치사상가의 길을 걷는다.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되고 예루살렘으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자 아레트는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그 재판에 대한 보고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2)”을 출간한다.

이 책을 통하여 설명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개념은 수많은 논쟁을 낳았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아렌트는 정치적 악을 유발하는 정신의 문제에 집중하여 저서활동을 하였다.

- 오토 아놀드 아이히만(1906.3. 19.- 1962. 6. 1)

독일나치스 친위대 중령

국가안보경찰본부 친위대 중령

국가안보경찰본부 유대인 담당 과장, 유대인 이주국 책임자, 1932 오스트리아 당입당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 “유대인 박멸”의 실무책임자.

1932년 나치당 가입, 정보부인 SD에 들어감

1932. 1. 20. 유대인 문제 최종 해결 정책결정 회의 참석

게슈타포 유대인 과장으로 유대인을 유럽 각지에서 폴란드 수용소 열차에 이송하는 최고 책임자

자신이 500만 명을 이송했다고 자랑했다.

독일 나치스 친위대 장교로 재직 중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및 독일 점령하의 유럽 각지에 있는 유대인의 체포, 강제 이주를 계획, 지휘했다. 독일의 항복 후 아르헨티나로 도망쳤다. 아르헨티나에서 리카드로 클레멘트라는 가짜 이름으로 15년 정도 자동차 공장 기계공으로 일하다가, 1960. 5.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에 의해 체포, 이스라엘로 압송되었다. 1961.12. 예루살렘의 법정에서 대전중 나치스 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600만 명의 학살 책임을 추궁당한 끝에 사형 판결을 받고, 1962. 6. 1.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는 평범한 노동자, 외판원 등으로 살다가 생계 때문에 나치당 가입하였다.

유대인들을 위한 합법적 차별은 1933. 1 .30.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자발적으로 독일을 떠났다. 그는 초기에는 유대인들이 독일을 떠나는데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1939. 9. 폴란드 침공 이후 유대인 박멸이 시작되었다.

1941. 7. 31. 헤르만 괴링은 하이드리히에게 독일, 독일이 통제하거나 독일에 협조하는 국가들의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책 ’실행계획서 제출하라고 요구한다.

반제 회담 : 1942. 1. 20. 베를린 교외 반제에서 개최된 나치 독일 차관급 수뇌부의 회의,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책:”: 독일 점령지의 유대인들을 폴란드로 실어와 모조리 죽이는 것

어떻게 유대인들을 서부에서 동부로 이동시켜 그들의 죽을 자리인 폴란드 총독부에 소재한 절멸 수용소들로 보낼 것인지 대략적 윤곽을 제시하였다.

회담 장소였던 ‘반제 하우스’ 별장은 지금은 ‘홀로코스트 추모기념관’이 되었다.

출처 입력

재판 당시 그는 자신이 유대인을 박해한 것은 상부에서 지시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후에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실험을 통해 부당한 명령이라고 해도 한번 받아들이면 무비판적으로 그 부당한 명령을 수행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즉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성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와 권리를 억압하는 사회, 구조악에 대한 저항이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실험으로 밝혀낸 것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스라엘이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지 않고 주권을 침해했다고 이스라엘에 항의했다.

한나 아렌트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그는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바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다.“ 나치즘의 광기로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다.”라고 적었다.

아이히만은 이아고도 멕베스도 아니었고, 또한 리처드 3세처럼 악인임을 입증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그의 마음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다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녀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나치 친위대기관 내에서 출세를 하려고 한 것 외에는 학살에 대한 동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특히 그는 반유대주의적 사상을 과도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정신은 정상이고, 악마나 괴물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의무를 다했을 뿐이며 위에서 내려진 명령과 나라의 법을 따랐던 것이다.

영도자의 의지를 가진 입법자, ‘아돌프 히틀러’의 밑에서 아이히만은 더 이상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없었고, 그가 바꿀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반제 회담”에서 관청, 사법기관, 국방부 간부들이 반박 없이 최종 해결(유대인 말살정책)에 동의했을 때 아이히만은 모든 책임에서 해방되었음을 느꼈다.

선량한 사회가 동의했는데 거기서 그가 작은 인물로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었겠는가?

반제 회담 이후 그가 거물들의 집단에서 전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때 최소한의 의심과 있을 수도 있던 양심의 가책마저 사라졌다

아이히만은 그의 양심을 자기보다 더 높은 지위의 간부들에게 양도한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그 순간 저는 제 자신이 본디오 빌라도처럼 모든 책임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 본디오 빌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반역죄를 씌워 사형을 언도한 유대 주재 로마 제5대 총독 이다. 빌라도는 예수가 죄가 없으심을 알고 놓아주려 하였으나, 대제사장들은 죽일 것을 요구하였다. 유대인의 협박과 극성스러운 압력에 굴복하여 예수의 처형을 허락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럼 빌라도는 무죄인가

아렌트는 전체주의적인 지배 선택권 하에서도 윤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에필로그에서 국제적 집단 범죄자의 이러한 현대적 전형에 대한 아렌트의 성찰 “법을 따르는 시민의 의무에 대하여, 이 판결을 국제법의 발전으로 분류(인류에 대한 범죄) 하는 일이 포함되었다.

아이히만은 사형에 처하는 것을 변호하는 이유를 대고, 이스라엘의 재판소가 사형이라는 판결을 내렸던 것을 정당화했다.

아이히만의 영향권 하에 놓인 유대인들은 종종 며칠에 걸쳐 유럽을 횡단하는 열차에 실렸다. 그들의 건강 상태, 나이, 성별, 열차와 가스실의 현재 수용능력, 강제수용소의 수용 정원 초과와 같은 여러 요인에 따라 유대인들의 죽음의 시점마저도 행정적으로 정해졌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행정적 대량학살자’라고 명명했다.

-느낌

고문 전문가 이근안 경감이라는 사람이 생각난다. 그 시절 국가에서 시키는 대로, 그는 운동권 학생, 개혁적인 사람을 잡아다가 고문을 하여, 간첩 등으로 진술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 피해를 입은 위안부 여성들을 상대로 성적 행위를 하는 일본 군인들을 생각한다. 그는 국가가 시키는 대로 전쟁에 참여하고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았다, 일본군인 각자가 죄인이 될 수 있을까?

일본은 전쟁이라는 국가적 임무를 일본 군인에게 맡기고, 군인들에게 위안부에게 성적 발산을 하도록 허락했다. 이런 경위 만약 당시 한 사람의 일본 군인을 체포하여 강간 등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이근안 경감은 시국사범들을 잡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고문을 하였다. 고문은 불법이었으나, 정부에서 이를 허락하였다. 시대가 바뀌어 그것은 폭력이고, 살인이었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는 어떻게 화답해야 할까, 바뀐 정권에서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국가에 소속된 개인이 이를 거부할 수 있을까?

시대가 바뀌어 형법의 잣대로 재면 그는 파렴치한 폭력 경찰이다.

나치가 600만 유대인을 죽인 것은 팩트이다. 아이히만이 당시 군인으로서 정책에 따라 지시하는 데로 명령을 따랐다. 행정적으로 조치를 취했고 실질적으로 유대인을 직접 죽인 것은 아니지만, 가스실로 보내고, 수용소로 보낸다. 우연히 수용소에서 잔인하게 유대인을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고 회의를 느꼈지만, 반제에서 이루어진 회담에서 높은 관료들이 인정하는 정책을 보고, 본디오 빌라도 같은 심정으로 죄가 없다고 느꼈다고 한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거행되는 반인륜적인 행위가 국익으로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안에 있는 국민이 홀로 정의를 외칠 수 있을까? 작가는 600만 명을 죽이는데 공헌한 아이히만은 평범하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놀란다. 우리가 생각하는 악이 너무 평범한 것에 놀랐다.

여고생을 강간하고 죽인 남자가 있었다. 현장검증할 때 그 남자가 여자애를 파묻은 장소에 가서 “000야 아저씨 왔다. 춥지”라고 읊조리며 무릎 꿇고 인사하는 것을 보았다. 그 남자의 눈이 사슴 같았다. 도대체 그런 잔인성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때 정말 의아했다.

나는 여고생을 납치하여 강간하고, 또 시체를 삼등분으로 접어 땅에 파묻은 그자의 면상을 보는 것이 두려웠으나 지극히 평범하고 온순한 사람이었다. 작가의 마음이 그 마음이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일본을 생각했다. 지금까지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비록 1차 가해자들은 전부 사라졌을지라도 그 후손들은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그때는 세계가 다 그랬고 전체주의 흐름 속에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그 후손들의 모습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물론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식민지를 만들어 가혹하게 피해를 준 것은 맞다. 그것을 이제 와서 죄라고 소급하여 심판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하여 식민지를 확보하여 그들은 많은 재산을 착복한 것도 맞다. 미국이 한 번씩 말을 듣지 않는 나라를 상대로 세계 평화를 위한 척 무력을 행사한다. 유엔은 미국의 의견에 동조한다. 심지어 파견도 한다. 우리나라 군인도 파병을 하기도 한다. 어떠한 폭력도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 정의인데, 그런 정의는 철학에나 존재한다.

변하지 않는 정의만이 역사에서 정의라고 판단한다. 그것이 국가의 명령일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국민은 인지할 수 있는 능력,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정치를 보면 어떤 게 정의인지 모르겠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한번 문제가 되면 정말 모든 것을 다 파헤친다. 그런 것에 자유로울 자 누구일까.

유대인 600만 명이 죽었는데, 그 죽은 것을 용인한 자 중에 유대인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 일제 강점기 때 친일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해방이 되고 친일파를 정당하게 처벌하고 재산을 환수해야 하는데, 기득권인 그 사람들은 자신의 보호막을 만들고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으로 또 다른 가문을 만들어 지금까지 자손들이 대부분 흥성하고 있다. 유대인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또한 전범인 나치들도 전부 처벌을 받은 것은 아니다. 영락을 위해 소속되어 영달을 누린 자, 그 후손들 또한 지금까지 영달을 누리로 있으리라. 재산은 세습되고, 자녀들은 부와 더불어 기회를 많이 제공받기 때문이다. 물론 소수는 처벌을 받기도 했지만.....

이런 풀리지 않는 문제, 그 울분으로 인해 정의는 죽었다고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