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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마루치아라치맘 2019. 12. 31. 11:35


서 평: 마이클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작가 에 대하여

마이클 샌델은 1953년생이다. 27세에 최연소 하버드 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하여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마이클 샌델교수가 정의에 대하여 수업한 것을 모아 책이 만들어졌다.

교수는 정의강의에서 학생들에게 몇가지 질문을 한다. 그 문제는 항상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두가지 답중 하나를 대답하면 도덕이 결여된 것같고, 다른 쪽을 답하려면 합리성이 결여된 것 같다. 언행불일치 되는 것만 모아 모아 질문을 하는 것 같다.


1. 전차기관사의 딜레마

시속 100를 달리는 기관사, 선로 위에 다섯명의 모습이 보이고, 좌측 비상철로는 단 한사람이 일하고 있다. 그 순간 기관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샌델교수는 5:1로 비교하여 비상철로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정의다 라고 부축이는 듯 질문한다. 일단 기관사가 달리는 철로에는 기차가 다니는 길이며, 시간이 공지되어 있다. 선로위에 있는 사람은 그길에 있으면 안된다. 일단 철로 위 다섯사람이 명백히 잘못한 것이다.

 

비상철로에 있는 사람은 잘못이 없다.

51이라는 인간의 생명으로 피해를 평가하여, 만약 비상철로로 이동하는 것이 맞는가?


- 나의 생각

내가 만약 전차기관사라면 나는 그대로 갈 것이다. 순간적으로 결정해야 할 때, 원칙대로 하여야 하다고 생각한다. 규칙은 지켜야 한다. 규칙을 지키는 선의의 사람이 희생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어제 좁은 아파트 앞 소방도로에서 치킨배달하는 종업원이 오토바이에서 넘어졌다. 고양이를 피하기 위해 핸들을 돌리다가 미끄러졌다. 연이어 차가 오는 상황에서 부딪쳐 일어나지 못하는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몇몇 사람이 넘어진 운전기사 주위에 인간띠를 형성하였다. 나는 사회적 정의를 느꼈다. 차도에 사람이 서 있는 것은 불법이다. 이런 경우 사고가 나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차도에 사람이 서있는 경우 불법이라 말할수 있을까,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 왜냐하면 예외까지 아우를 수없다.

 

2. 미뇨네트호 생존기

남태평양을 헤매는 미뇨네트호, 모두 네명의 선원이 타고 있다. 먹을 것이 없다. 20일째 되는 날 병에 걸린 나약한 어린 선원을 희생양으로 삼아 4명이 인육을 먹었고, 24일 째 되는 날 구조되었다.

제러미 벤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공리주의에 의하면, ‘ 한사람이 고통받고 희생되어 더 맣은 사람이 살았고,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하다면 그것은 옳은 행위이다. , 남은 선원은 무죄이다.

 

- 나의 생각

나는 생명을 단순히 수로 비교하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법의 이념 또한 한사람이라도 죄없는 사람을 처벌하는 과오를 벌이지 않으려고 한다. 성경에도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죄없는 자가 저 창녀에게 돌을 던져라.’ 그들은 살아남았지만 살인을 한 것이다. 물론 감경사유는 되겠지만, 어떤 이유에서도 살인이 정당화 되어서는 안된다....

 

3. 비용대 편익

필립모스의 계산서

사람들은 담배를 많이 피울수록 국민의 건강이 나빠진다. 그래서 담배에 세금을 높이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한 담배회사가 계산서를 내놓는다. 세금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 담배를 많이 피우면 조기 사망자가 생긴다. 이들에 대한 복지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국가재정이 절약된다. 정부가 얻는 이익을 수로 계산하여, 담배세금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

철저하게 사람의 목숨을 비용과 편익으로 계산하였다.

공리주의자 기준의 문제점은 모든 가치와 행위를 하나의 저울로 개량하거나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존 스튜어트 밀의 주장이 생겨난다.

- 나의 생각

이상한 계산법, 그런데 이런 논리도 생겨날 수 있다고 본다. 담배와 술을 만들어 내고, 주세와 담배세 세금은 정말 높다. 그런데 그것은 몸에 좋지 않다. 그런데도 광고하고, 만들어낸다. 이것이 국가세수의 큰 기반이 된다. 국민에게 좋지 않은 것을 팔고, 국가 수익의 근원이 된다. 부동산경기가 좋아지면, 세금이 많아진다. 그런데 국민은 허덕인다. 이상한 세상은 맞다. 돌고 도는데 어디가 시작인지 어디가 끝인지 모르겠다.

 

4. 행복은 누구에게나 똑같을까요?

제러미 벤담은 최대다수의 행복이라는 한가지 기준만 제시하였다. 존스튜어트 밀은 즐거움은 행복의 질적인 부분까지 강조하였다. 사회전체를 위하여 여러 가지 가치있는 것들을 권함으로써 사회전체의 행복이 더 커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벤담은 모든 행복을 똑같은 가치로 보고, 그 양을 중시하였다면 존 스튜어트 밀은 행복의 질을 중요하게 여겼다. ‘질적공리주의자로 불린다.

 

5. 부자와 가난한 자를 위한 정의

개인의 권리와 정의의 문제이다. 미국은 상위 1% 부자가 미국재산의 3분의 1일 가졌다. 개인의 권리에 대하여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개인은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서 존중받을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소수부자들의 권리와 다수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경제적 불평등 해결방법은?


- 나의  생각

인지도 높은 연예인이 수억원의 돈을 받고 광고를 한다. 그런데 그 광고가 하자있는  제품이라면, 그 책임을 연예인에게 돌릴 수 있을까, 그 연예인은 평소 정직하고, 정의로운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사람들은 그 연예인의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산다. 이런 경우 연예인에게 책임이 있을까? 그 돈도 물품을 구매한 구매자가 지급하는 것이다. 연예인은 광고수익을 생각하기전 그에 따른 책임도 생각해야 하고, 만약 잘못된 제품이라면 수익금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정의가 아닐까?

 

6.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로버트 로직은 내 수입의 일부를 달라고 하는 건 내 시간을 달라는 것이고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 나 자신에 대한 소유권을 그들에게 주는 것이다. 나는 나만이 소유할 수 있다. ‘최소군주론을 주장한다.

- 나의 생각

한 그룹의 회장은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연명치료를 하고 있다. 죽이자니 상속세 등 문제가 있고, 그래서 연명장치를 하고 숨을 쉬고 있다. 물론 폭탄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너무 세금 구조가 편협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분배로 본 세금, 올라도 너무 오른다는 말이 있다. 알게 모르게 내가 낸 세금은 많은데, 내가 누리는 혜택은 많아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의무만 늘고 권리는 줄어드는 느낌이다. 지하철을 타면 무료승차 노인들이 즐비하다. 물론 나도 그 나이가 되려면 얼마남지 않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지하철을 돈내고 타는 사람은 봉인가? 지하철 직원들이 지하철 요금을 내지 않는 것은 정의일까? 그런 것들이 다 의문이다. 분배를 단순히 나이로 하기에 평균연령이 높아지고, 젊은이들이 줄어들고 있다. 분배도 점검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돈을 대려니  기히 수익자들의 반발이 심하고 표와도 연결된다. 

 

7. 군인을 찾습니다.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있다. 미국군인의 25%가 정규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부자들은 돈을 대신 내어준다. 국방의 의무는 누구에게나 책임이 있는데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군인이 된다. 이것은 공평한 것일까?

모든 것을 돈으로 매길 수 있을까?

자유주의자들은 동의한다. 그러나 회의주의자들은 시장에서 이루어진 선택이 겉보기처럼 자유롭지 않다. 스스로 군인이 되고 싶어 자원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다. 왜냐하면 돈을 벌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또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에게 국방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는가? 군인으로 나라를 지켜야 하는 것을 시장에 맡길 수 있나?

정의는 사람들 사이의 자유로운 선택과 합의이다. 이것이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 나의 생각

얼마전에 방탄소년단 병역 문제가 거론되었다. 사회적 합의를 하자니, 병역의무자인 대한민국의 남자에 대한 특례양산의 시발점으로 보이고, 국익을 위하자니 면제를 해주고 싶다. 어떤 것도 원칙을 벗어나면 안된다. 일단 병역법에 그런 특례가 없기에 선처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악법도 법이다. 그것을 함부로 건드리면 질서가 파괴된다고 생각한다. 질서가 파괴되면 혼란이 온다.

 

8. 대리모계약

어머니로서 모든 권리도 포기하겠습니다.’ 대리모 계약 및 공증까지 하였으나 대리모 여성은 애를 낳은 후 변심하여 애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하면서 애를 데리고 갔다. 부부는 계약서 내용에 따라 대리모에게 아이를 내놓으라는 내용으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자는 부부는 아이를 얻어서 행복하고, 대리모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계약이다. 모두가 이익을 얻는다는 주장이다.

자유주의자는 대리모는 아이를 낳아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것이 어떤 감정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이것을 진정한 합의라고 할수 없다.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다

도덕주의자는

여성이 아이를 낳는 것, 인간은 사고 파는 상품이 아니다. 존중받아야 할 존재이다.

칸트의 도덕적 행동이란 어떤 행동이 도덕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 결과가 아니라 동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왜 그것을 원하느냐 하는 동기이다. 도덕적으로 선하려면 도덕 그 자체를 위해서 행동해야 한다.’

 

-나의 생각

자녀가 필요한다. 그런데 임신이 되지 않는다. 대리모의 모성은 돈으로 치유될 수 있을까? 의뢰인들은 선의의 동기로서 현대과학의 힘을 빌린 것이다. 이것 또한 AI시대를 맞는 지금,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9. 정의에 대한 주장

1) 공리주의자는 사회전체의 행복을 크게 하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

    2) 자유지상주의자는 소득과 부의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규제없는 시장에서 자유로운 교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3) 칸트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든 합리적인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 어떤 행동을 시작한 동기에 달렸다.

   가언명령(조건명령), 정언명령(무조건 명령)이 있다.

   정언명령이란 그 자체로 옳고, 스스로 이성을 따르게 하는 명령이다. 칸트의 의무는 행동의 동기, 어떤 내용이 올바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이유가 아니라면 다른 이익, 개인적 바램 등의 이유 때문이다. 그것은 도덕적 가치가 없다.

  자유란 내가 자유로울 때 내 의지를 스스로 결정할 때 나타난다.

  가언명령(목적명령):

  무조건적 명령 다른 목적 계산하지 않고 하는 명령, 행동이 그 자체로 옭고 그래서 이성에 따른 것이라면 정언명령이다.

   칸트는 정언명령에 따르는 것이 도덕적이며, 그렇게 행동할 때 인간은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말한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기에 정언명령에 따라 살 수 있고, 그래서 인간은 존엄하다.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하여 수많은 계약들이 있다. 공정한 계약을 위한 정의로운 원칙은 계약과 합의의 도덕성에 있다.

- 나의 생각

정의, 정언명령을 따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언명령 자체를 거부하고, 양심을 버리고 법과 규칙이 미처 정하지 못한 것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런 사람이 대체적으로 잘^ 산다. 그럴 경우 정의와 도덕을 따르는 나는 양심에 털을 기르고 싶을 때가 많다. 국가정책을 믿고 부동산을 투기목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집값은 평정되고 한가정에 두채, 세채는 가질수 없다고 믿었다. 한푼두푼 절약하여 모은 돈보다 분양권을 구매하여 은행이자 몇 번 넣고 수천만원의 이익을 얻는 현상을 보면 나는 바보였다. 사회적 정의, 정언명령을 따른 나는 바보였다. 배부른 돼지가 낫지 않을까, 몇배가 오른 집값을 보면서 정부를 탓하는 나는 바보가 되어 있다. 슬픈 바보이다.

 

10. 미안해야 라고 해야 할까요

지난 수십년 동안 역사에 기록된 잘못된 행위들을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문제, 2차 세계대전시 일어난 유대인학살, 위안부 문제, 과거 선조들이 잘못한 것을 이후의 세대가 사과해야 할까요?

국가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국가가 현재나 과거에 했던 일이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것은 도덕적으로 무지한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역사적으로 행한 범죄에 대하 후손들이 사과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 나의 생각

유대인학살, 위안부 문제, 그것을 행한 사람들, 그 후손들이 사과해야 할까, 이것은 도덕적 문제이다. 선조가 덕을 행하면 후손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런 도덕적인 답이 될수 있을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정어린 사과를 받고자 한다. 그들은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위해 행한 것이라고 희석한다. 가진 자들의 변명은 궁핍하다. 진정어린 사과를 하지 않는한 용서할 수 없다. 혹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었더라도, 그것은 결핍으로 인한 어쩔 수없는 선택이었다. 누가 함부로 몸을 주고 싶겠는가?

 

11. 동생의 선택

내동생은 살인 용의자이다. 신고해야 할 까요?

내부모와 형제를 보호한다는 가족에 대한 자연스러운 의미와 함께 사는 공동체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의무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 나의 생각

만약 내가 이런 경우 어떻게 할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벌써 눈물과 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공동선을 생각하면 자수를 시켜야 한다. 감출 수 없지 않은가, 죄에 대한 벌은 있어야 한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그래서 원죄에 대한 책임론, 종교가 범람하는 것이 아닐까?

 

12. 중립을 지킨다는 것에 대하여

낙태와 배아줄기 세포연구, 어느 순간부터 인간이라고 하는가?

존롤스는 도적, 종교적 신념을 배제해야 한다. 사람마다 좋은 삶에 대한 합리적이고 다양한 생각을 갖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논쟁에서 즉 정의와 권리에 대한 논의에서 종교적 도덕적 가치를 배제하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나아가 정의를 논의할 때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본질적인 도적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정의와 권리의 문제를 결정할 수없다.

- 나의 생각

정의를 이루기 위해 법이 있다. 그러나 법으로 모든 것을 묶을 수 없다. 그 위에 도덕이 있다. 도덕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타성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13. 정의와 좋은 삶이란

경제적 이익만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시장중심주의는 도덕적 한계가 있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에 관심을 가진다. 이것이 커질수록 공동체라는 의식은 약해지고, 민주시민의식은 사라진다. 부의 분배를 정의롭게 할수록 모두가 좋은 삶의 방향으로 다가 갈 수있다.

- 나의 생각

올바른 분배가 '정의'이다. 사회복지가 잘된 국가들은 젊은이들이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몇 년전만 해도 슈퍼는 새벽 5시에 문을 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침 8시 정도에 대다수가 문을 연다. 노력하는 삶보다는 삶을 누리는 것이 우선시 되었다. 혼돈인 것 같다. 사고의 혼돈, 50대 이상은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젊은 이들은 집이 없어도 누려야 한다는 성향이다. 분배가 정의로와야 하는데 이것 또한 편법이 성행한다. 집을 사지 않고, 형식적으로 이혼을 하여 자녀교육비를 면제받는다. 집값 상당의 차를 운행한다. 신용불량자가 되어 복지의 혜택을 누린다. 돈을 다발로 숨겨 놓고 쓴다.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사회 곳곳에 이런 편법행위가 즐비하다. 열심히 세금내고, 그들보다 못한데 10등급이라는 이유로 국가장학금은 한번도 타지 못하였다. 궁핍하게 아끼며 사는데...

 분배의  공정, 이것은 유토피아가 아닐까...

 

14. 정의는 세가지 방식이 있다.

첫 번재: 최대수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공리나 행복 극대화

두 번째: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세 번째: 미덕을 지키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행복을 최대화 한다는 생각이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 만들 수 없으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하고 서로 다른 주장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합니다.

 

15. 공동선의 정치를 위한 새로운 방향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면,

1) 시민들이 사회전체를 위해 고민하고 봉사하고 함께 하는 좋은 삶을 위한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해요

 

2) 경제적인 수치로 가치를 계산하는 시장주의와 시장중심적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 시장주의가 갖는 도덕적 한계가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3) 도덕과 부의 불평등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 도덕과 가치를 고민하는 정치로 이끌어야 한다. 법과 정치는 도덕적, 종교적 논쟁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법과 정치가 도덕적, 종교적 중립을 지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서로 다른 입장을 가졌더라도 경청하고 상호존중하여 합의에 다다르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기술입니다.'

- 나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 내용이 너무 좋아서, 잊어버릴꺼 같아 나름대로 요약을 하였다.

요약하면서 느끼는 것은 개인주의가 급성장하고 있는 현대의 삶, 젊은 이들이 줄어들고 노인이 많아지는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부의 재분배가 시급하다.

자유주의자들은 이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사회적 정의는 어차피 이루어진 부도 사회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사회의 도움이 없었다면 부가 축적되지 못했을 것이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포노사피엔스 시대 마이클 샌델은 칸트의 무조건적인 정언명령에 따르고, 공동선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한다.

 

어제 상인동 지하철 참사 기념비가 있는 곳에 갔었다. 101명의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기념비에 이름이 적혀있다. 참으로 슬픈 역사이다. 그런데 대구시에서 나를 대신하여 기념비도 세우고, 시도 새기고, 추모할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내가 낸 세금으로 이런 것을 대신해 주었다고 생각하니.

우리가 모르고 있는 동안, 공동선을 위해 많은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편법으로 이득을 취하는 사람도 있지만, 서서히 공동선을 위한 정치, 제도가 만들어져 가고 있다. 완벽한 제도는 없다. 법은 언제나 법을 피하여 나쁜 행위를 하는 것이 문제가 되면 늦게 만들어진다. 어떤 좋은 제도도 항상 편법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어쩌면 인간의 원죄 때문이 아닐까. 영생이 없기에 인간은 그나마 죄에 대하여 참회를 한다. 더불어 사는 세상 공동선이 무엇일까 항상 고민해본다.


어제 어떤 노인이 의료법위반 등에 대해 상담이 들어왔다. 의료법에 보면 환자에게 설명을 해주게 되어 있는데 일방적으로 시술을 하고, 의료비를 부당하게 청구한다는 이야기였다. 병원에 입원하고, 혼미한 상태에서 어떤 설명없이 요도관을 삽입하여 움직이지도 못하였다. 나중에서야 성기 부근에 설치된 요도관을 보고 수치심을 느꼈다.이에 간호사에게 왜 설명을 해주지 않았냐고 하니  들은 척도 안하여 소리를 지르고 소위 말하는 깽판을 치니 30분정도 지나 의사가 와서 '폐에 물이 차서 요도관을 삽입했다라고 변명했다고 한다. 폐에 물이 차는 병이 아닌데 거짓말까지 한다고 했다. 의료법은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환자는 돈 벌기 위한 물품이며, 알권리는 없고, 의사가 갑질을 한다는 내용이다.

사회적 정의와 현실은 차이가 있다. 의료법의 궁극적 목적은 환자를 보호하기 위함인데, 실상 병원에서는 환자의 인권은 실추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런데 시술할 때 마다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다보면 다른 환자들 치료가 불가하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도 감수를 해야 한다. 현실과 정의는 차이가 있다고 말씀 드렸다. 다행히 이해는 하셨으나, 병원에서는 환자를 이고 의사가 이라고 마무리하셨다.

어찌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논리지만 종합병원 응급실에 몇 번 가본 사람이면 충분히 느낀다. 몇시간을 기다려도 의사는 보이지 않고, 방치된채 있다가 겨우 검사를 한개 는데도 설명이 없다. 그런데 의사와 간호사는 많은데 나에게는 아는 척 하지 않고 유도 없이 로봇처럼 대해준다. 설명도 구차하게 몇 번을 찾아가야 겨우 1분 정도 듣는다.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의료보험비는 정당하게 내고 있는데, 서비스는 엉망이다 그런데 의료진들도 고의가 아니다. 그냥 바쁘다.

바쁘다 바쁘다 바빠’..... 그것은 종합병원 응급실에 가보면 느껴진다. 그래서 의료의 질, 서비스를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사회의 정의는 무엇일까?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선생님, 택시기사, 고용노동자, 판사, 의사, 대통령 등 자신의 업무에 대하여 상대방에게 선을 다하는 것이다. 자녀도 부모에게 예를 다해야 하고, 부모 또한 자녀를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어야 한다. 그것들이 모여 사회적 정의가 이루어진다.


인문학이 죽어가고 있다. 행동의 기초가 되는 인문학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 중심, 정언명령, 정의의 기준이 선 사람이 사회에서 행동할 때 사회적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


자살도 많고, 묻지마 살인도 많다. 가정폭력, 상습 반복적 권리만 주장하는 민원인들, 사회복지 혜택을 누리려고 연구하는 사람들, 국가의 자금을 탐내는 사람들, 인터넷 악성댓글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무리 법을 만들어 내고, 규칙을 업그레이드해도 기본 정의의 개념이 없는 사람은 또 다른 편법을 자행한다.


나는 생각한다. 정의란 양심이 실천될 때, 이루어 질수 있는 것이라고.

양심을 가지고 정의롭게 사는 사람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복지국가가 실현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