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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마루치아라치맘 2019. 12. 13. 00:43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한 개인이 독립적으로 성장하려면 우리는 의존하고 있던 많은 것들에서 독립해야 한다. 따뜻한 가족, 부모님의 품, 도덕적인 신, 의지가 되는 친구, 기대고 싶은 사람 등 많은 것들을 떠나 홀로 서려면 자아의 내면적인 탐구와 비판적 사고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필요하다.

전쟁처럼 자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외부적 요소들은 내면적 자아이야기로 설명할 수 없다.

지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인식하려면 자아가 끊임없이 낡은 세계의 껍질을 벗어내고 새로 태어나는 방법밖에 없다.

 

10살 주인공 싱클레어는 데이안의 사고 가인과 아벨에서가인은 용감한 자로 평가한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옆에 있던 두 도둑 중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며 개종한 도둑을 오히려 비판한다. 그렇게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런 이상한 사고 앞에 주인공은 무한 반복적으로 되물음을 한다. 불교에서 선문답을 하는 것 같다. 신부 피스토리우스를 통해 아브락사스(고대철학의 신비주의적 진리로서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인 과제를 가진 어던 신으로 보고 있다.) 적 양면성을 알게 된다. 그런 것을 깨닫게 되고 자살을 시도하는 친구에게 용기를 준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 새로운 사고를 하는 것은 공포가 따른다. 데미안은 기존의 틀을 부정하는 사고로 이교도라고 낙인찍히기도 하였다.

작가 헤세는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라틴어학교에 다녔고, 수도원 학교에 입학하였다가 도망을 하였다. 그는 주어진 신을 버리고 데미안적 사고로 역설적으로 기존의 신을 비판하는데 참여한다. 더불어 타락한 삶을 좇는다. 처음 기존의 틀을 깨고자 할 때 공포가 왔으나 공포 뒤 쾌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일상에서 일탈을 시작한다. 싱클레어는 여러 가지 고통을 체험한 후,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듯이, 사력을 다해 껍질을 부수고자 한다면 극복할 수 있다는 결론을 찾았다. 지극히 기독교적 윤리의식으로 회귀한다.

 

겁에 질려 평생 자아를 세상밖으로 꺼내 보지도 못하는냐, 당당히 세계와 마주하느냐는 우리들 선택에 달려 있다.’

 

이글을 읽으면서 작가 헤세가 이 글을 쓸 무렵 정신적으로 많이 약해져 있었다고 느꼈다. 1차 세계대전 전쟁 주모자들은 전제주의와 자기들만이 우월한 민족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고, 전쟁이 정답인 것처럼 행동하였다. 죄와 악, 전쟁과 평화, 삶과 죽음, 천사와 악마, 모든 것을 이분적으로 설명하려면 모순되고 언어의 유희앞에 구토가 난다. 헤세는 정신적으로 사르트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싱클레어가 실존적으로 사물을 분석하는 것을 따라 읽다보면 나도 어지럽고 혼돈스러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싱클레어처럼 정신적 갈등을 같이 공유하였다. 헤세는 이 글을 쓸 당시 40세 정도 였고 나름 알려진 작가였다.

헤세라는 작가의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에밀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데미안]1916년 쓰고 19191차세계대전 끝날 무렵 출판하였다. 작가의 이름과 주인공의 이름이 일치하였다. 독자에게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을 부각시키고, 독자가 싱클레어가 되어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도록 하는 길잡이로 쓴 것같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사람들의 이중적인 모습, 의리가 없는 사람들을 보고 그는 데미안의 말을 빌려 사람들이 칭송하는 기독교에 나오는 인물을 비판했다. 아벨, 그리고 예수 옆에 못박혀 죽은 도둑을 예로 들었다. 이 책의 중요 사상은 기독교이고, 기존 기독교의 이분법적 사고를 색다르게 평가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열 살 때 만난 프란츠 크로머를 악마로 표현하고, 싱클레어를 선한 천사로 표현하면서 점차 악마가 되는 것으로 시작부분을 기술하였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고 자아가 만들어지면서 싱클레어 자신이 악마를 끌어들였다고 고백한다. 내안에 양성이 있다.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다. 악도있고 선도 있다. 그러나 조금씩 찾아가면서 악을버리고 선을 찾아가는 것을 그렸다. 구도자의 모습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구도자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타협, 양보, 억울함, 거짓, 무수한 변명이 있다. 높은 산을 넘는 마음으로 살다보면 언제인가 끝인 죽음이 보인다. 그 뒤에는 천국이 있겠지.....

 

내가 살아온 날을 돌아보면 헤세처럼 시대적으로 강력한 충격인 전쟁을 겪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물질적인 문제, 육체적인 문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문제, 배신 등 소소한 고통에 힘들어 하고, 그런 큰 문제가 없기에 소소한 따돌림에 지쳐있다. 전쟁은 누구에게도 가장 큰 상처를 안겨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성장하는 소년 싱클레어는 방황을 한다. 결국 데미안을 통해 성장한 싱클레어, 둘 다 전쟁에 참여하고, 데미안은 결국 전쟁에서 죽음을 맞는다.

마지막 부분이 전쟁에서 죽은 데미안을 적었다. 결국 작가는 1차세계대전 중에 여러 가지 내면의 갈등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전쟁을 주도한 무법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 같다.

 

나의 인생을 생각한다. 가장 큰 고통이 무엇이었을까? 전쟁도 없던 시대를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대학교 때까지 무탈하게 살다가 졸업을 한 후 세상에서 소외된 느낌을 받았다. 나 외 다 행복하고, 자기의 자리가 있는 것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직장을 가지게 되었으나, 다시 나는 날개를 잃은 천사처럼 결혼이라는 막연한 단계에 멈추었다. 정말로 그리운 어머니와 영원한 이별을 하면서,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고통을 받았다. 그런 충격은 너무나 커서 아픈줄 조차 못 느꼈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도 무소불휘인 신들도 사람의 예견된 죽음을 막을 수 없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는 것에 괴로워했다.

그렇게 인생은 계속되는 도전을 한다. 어쩌면 누구다 다하는 것이라고 터부시 되더라도, 한고비 두고비 넘고 나이가 들어갈 때 축복만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공주, 나는 천사며 너는 악마라는 생각을 무한 반복하였으나, 실상은 내 마음이 분노하고 내가 죄인이다. 야곱의 싸움처럼 죄를 짓고, 다시 정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이전 죄를 씻기도 하였다. 누구다 다 죄를 짓고, 선과 악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는 헤세의 모계 사회론에 대한 것을 반영한다. 에바(eva)는 창세기에 나오는 인류최초의 여성의 이름이다. ‘에바부인인류의 어머니역할이라고 평론가들은 평한다. 작품에서 그는 새로운 서구 문명을 탄생시키는 어머니로 암시된다. 에바부인은 아브락사스 신을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에바부인을 통해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을 모두 포용하는 신으로 표출한다. 상당에서 예수님께 기도하고, 마리아께 절을 할 때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리아는 사람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낳은 여인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신이라는 양성을 소유한 존재라고 할까....

 

나는 데미안을 읽으면서, 싱클레어가 기독교에 대한 반항심이 가득차 의심을 하면서 따지고 들어가 자신을 찾아가고, 결국 죽음으로 치닫는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

싱클레어는 기독교 윤리가 선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인간은 양면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도 나의 양면은 싸움을 하고 있다. 오늘도 나는 나에게 던진 화두를 쥐며 살아간다. 자신과의 싸움은 하루가 25시이다.

그러나 일년은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