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영화 평...

나의 휘게 라이프스타일

마루치아라치맘 2017. 11. 16. 14:17

나의 휘게 라이프스타일

 

휘게(hygge)란 덴마크에서 유래한 말로 편안함, 따뜻한, 아늑함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늘 대하는 공간속에서 느끼는 휘게한 것은 어떤 것일까? 내나이 오십, 물욕, 명예욕, 무수한 욕심만 쫓으며 살았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모성이 없다는 서글픈 사실 앞에서 의무만 가득한 어른됨의 서러움을 느낀다. 어른이기에 되돌아갈 수없는 현실, 인생에서 말하는 끝없는 책임감을 거부하고 싶었다. 후회하며, 끝없는 책임감에 아이처럼 울었다. 엄마라도 있다면 엄마의 품에 안기며 도망가고 싶은데, 엄마는 돌아가시고 없다는 현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침대에 누웠으나 안을 벼개가 없는 느낌이다. 엄마는 반항도 허용하지 않는 현실, 이것이 어른의 말로이다.

 

늘 마음은 다른 곳을 꿈꾼다. 내가 있는 곳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제2의 삶을 꿈꾸는 나는 불행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선택에 대한 반성, 나만 불행하다는 의욕상실, 그것을 감당하기에 한계에 도달했다.

이래서 자살을 하는구나!

갱년기 우울증이 생기는구나!’

반항에는 나이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오늘도 정돈되지 않는 스무살 딸의 방을 치워야 한다. 내눈엔 하나같이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다. 렌즈, 가발, 수도 없는 립스틱, 정돈되지 않은 책들, 답답한 집기류, 흐트러진 옷과 이불, 어디에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25년이 되었으나, 아직도 내손이 필요한 공간, 감옥과 같은 이 집에서 나가고 싶다. 권태로움이 나를 더욱 분노하게 한다.

 

휘게라이프를 위해 일단 밝고 가벼운 것으로 이불을 바꾸었다. 최대한 편안한 벼개로 바꾸었다. 미련처럼 모아둔, 물건을 하나 둘 버렸다. 심지어 졸업앨범도 버렸다. 과거의 짐은 보물이 아니라 나의 쉴 공간을 잡아먹는 하마였다. 짐이 주인이 되어버렸다. 하루에 하나씩 버려가고 있다. 버리는 만큼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과거의 물건이 나에게 추억을 쌓는 것보다, 현재의 삶에 짐이 되었다. 바이러스처럼 침투된 과거의 잡귀를 버리니 현재의 휘게리한 공간이 생겼다. 나의 휘게는 바로 무거운 짐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빵한조각에 우유한잔을 한다. 음악사이트에 내가 좋아하는 록그룹의 노래를 가득 틀고 그 비트에 취해서 아침청소를 한다. 자녀를 변화시키는 것은 죄수를 교화하는 것보다 힘들다는 것을 몸서리치게 느낀다. 내가 변하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깨닫는데 이렇게 시간이 걸렸다. 내 움직임 따라 밟히는 짐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청소기를 밀고, 봉걸레로 방을 닦는다.

차례로 가족을 깨운다. 베란다에 담긴 세상을 본다. 오늘은 화창하다. 가을이 오는 소리, 밤이 길어지는 것을 느낀다. 샤워를 한다. 시원한 샤워코롱을 바른다. 내 손길 닿는 대로 옷을 입고, 큰 반지, 흔들리는 귀걸이를 한다. ‘나홀로 비친 거울 속, 나는 참으로 예쁘구나.’ 나와의 부끄러운 대화, 어제보다 더한 예쁨.......

 

집을 나간다. 전철역으로 들어가는 길, 그곳을 나오는 그 여인을 오늘도 만났다. 빨간 장미같은 여인, 화려한 옷, 더 붉은 입술로 마주한 그녀,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누군가와 미소를 머금으며 전화를 한다. 강렬한 입술,색조 화장,시원한 이목구비, 시원한 가슴선, 화려한 옷매무새를 보며 대리만족을 한다. 전철 속에서 잠시나마 어색한 눈빛을 피하기 위해 책을 든다. 책을 읽노라면 내가 지성인으로 탈피되는 느낌을 받는다. 연기일지라도 그 느낌이 너무 좋다. 나는 내 삶이 끝없는 연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연기하는 영화가 관객이 많기를 기원한다. 멋쩍게 휴대폰영상이나 글을 보는 것보다는 책이 더 좋다. 나도 누군가의 훔쳐봄의 대상은 아닐까. 영감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다른 이의 눈을 피해 나를 쳐다보는 눈을 찾아보지만 그런 눈은 없는 것 같다. 사무실에 도착한다. 내 빈 자리는 나를 기다리며 잠자고 있다. 버릴 것은 버리고, 물티슈로 책상을 간단히 닦으며 내 자리를 깨운다. 그리고 커피를 태운다. 그 향기에 스스로 도취되어 시인인 것처럼 커피를 내 입술에 녹인다. 새로 일을 시작한다. 전화벨이 울리고, 상담을 하고, 조사를 한다. 커피의 따스함이 나에겐 휘게다. 민원인과 실랑이를 할 때 커피한잔을 나누며 쉬어간다. 잠시 이 휘게이다.

 

동료들과 식사를 하고, 한 번씩 창넓은 찻집에 들어가 차를 나눈다. 밥값에 육박하는 커피 값에 놀라 피하고자 하였으나, 잠시 나누는 대화 속, 나는 쉬고 있었다. 휘게를 느낀다.

 

50살을 살고, 개명을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가장 흔한 이름 영숙을 버리고 스스로 지은 이름 풍경을 대법원에 등록하였다. 사주를 피하기 위해 한글로 개명하였다. 바람 속에 울리는 종, 자연이 만드는 모습, 풍류를 아는 경찰이라는 의미도 되는 다의어이다. 의미를 담은 이름을 새긴 도장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사회에서 나를 찾는 사람들, 도저히 경찰관 이름이 아니라고 판단, 의혹을 가지고 재차 확인하는 경우도 많다.

 

사무실에 둔 캔들워머에 블랙체리 향초를 태운다. 이 공간이 흔들리는 요람같다. 덴마크 사람들은 벽난로, 촛불, 의자 위에 있는 무릎담요 등에서 휘게한 삶을 느낀다고 한다.

 

나에게 있어 휘게한 그 이름을 불러본다. 적포도빛 캔들, 시원한 바람, 새소리, 흔들이는 나무, 계절에 따라 순서대로 피는 꽃, 거울에 비췬 내모습, 코인노래방에 부르는 노래, 그이와 나누는 차 한 잔, 선술집에 앉아 동료들과 술잔을 나누며 건배하는 순간, 그리고 내 집, 헬스장에서 나의 육체와 대화하며 베인 땀, 내 사무실 내 자리, 영상이 수려한 영화, 내 삶의 느낌을 대변하는 소설, 조그마한 화분에 커가는 장미허브.......

 

사소한 일상이 나에게 의미로 다가설 때, 나는 힘을 얻는다. 휘게한 삶은 복잡하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생활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것이라는 것을 책속에서 깨닫는다. 일상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때 그것이 진정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내 휘게리한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염시키고 싶다. 그럼 당신도 행복해질 수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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