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국어선생님께

마루치아라치맘 2008. 11. 3. 22:42

 

그리운 국어 선생님께

제가 대구 대명여자중학교를 입학하던 때가 1980년 이었습니다.

그때 저의 나이 13살, 선생님은 아마 40대 중반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성숙한 편이라 저는 이때 사춘기를 앓고 있었나 봅니다.

또래 친구들은 어리게 보였고, 감출 수 없는 감성을 연예인에 미쳐도 보고, 그렇게 혼자 콕 쳐박혀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 처음 접하는 국어시간

선생님은 너무나 수더분한 얼굴로 나타나, 국어책을 멀리한 채 수업시간에 시를 한수 적고는 외우게 하였습니다.

이전까지( 국민학교때)는 담임선생님이 전과목을 다 가르쳐 주셔서 국어에 대한 느낌도 없었습니다.

처음 접하는 국어시간, 국어선생님이 시를 외우게 하고, 시인을 설명하였을때, 저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저는 모든 시간이 국어시간이 되었습니다. 혼자 연습장에 시를 적었습니다. 온통 시로 가득찼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어릴때 너무 너무 산골골짜기에 살았답니다.

그래서 이른 봄, 진달래가 산에 꽃대궐을 이룰 때, 도시로 나가는 완행버스가 떠날 때 쯤

어린 한소녀가 치마 가득 진달래를 꺾어 가득안고, 버스안 승객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소녀는 정말  이쁘고 고운 꽃을 도회지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게 사랑이고 시였던 겁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의 감수성은 선생님을 따라 꿈을 꾸곤했습니다. 너무나 평범한 저는 선생님 눈에 뜨이지 않게 홀로 시를 쓰고 홀로 감성을 달래곤 했습니다.

물론 시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한 것이지만, 그때 제가 낙서한 글들은 선생님 따라 이쁘고 아름다웠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감수성을 접어두고, 고등학교, 대학입시에 매달리면서, 그 감성은 묻어두어야만했습니다.

 

한번씩 삶에 대해 회의가 들고, 싫증이 날때쯤이면 , 서투른 글 한두편 낙서해보기도 하였습니다만 또 다시 삶의 현장에 서야하기에 아무런 것도 하지 못한채 시간에 끌려다녔습니다.

 

삶에 지쳐서 살다가 어느덧 마흔 카운트 다운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세월을 쫓아 살은 걸까요. 아님 돈을, 물욕과 명예를 쫓아 살은 걸까요

모든 것이 계산이고, 숫자로만 가득찬 시간들이었나 봅니다.

한개 , 두개 머리카락은 하얗게 물들여져 가고 있습니다.

 

올해도 여전히 봄은 왔습니다.

아이스크림 같은 목련이 꽃을 피우고, 꽃이 지고, 잎새가 납니다. 또 노란 개나리가 피고, 또 산등성이를 태우는 진달래가 가득 찼습니다.

올해의 봄은 묻어있는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부릅니다.

그리고 이름조차 희미한 국어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복수 선생님’

살짝 떠오르는 이름을 불러봅니다.

당신은 저를 조금도 기억하지 못할껍니다.

 

남은 시간 내가 무엇으로 채울지 모르지만. 아마도 더 이상 돈에 물들지 않고, 시간에 노예가 되지 않을 껍니다.

선생님이 불러일으킨 시심은 지금 이순간 나에게 강렬한 메시지가 되어 울려퍼집니다.

‘너의 감성을 따라.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아마 선생님은 지금 뽀얀 할머니가 되었으리라.

아니면 하늘나라에 가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의 감성을 느끼고 있는 어느 한 여인이 있다는 것을 알면 너무나 행복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선생님 스승의 날입니다. 보은하며 살아야하는데, 선생님의 이름조차 희미한 지금, 선생님의 그 아름다운 마음을 담으며, 흉내내어 봅니다.

그리곤 그 당시 이쁜 당신의 소중한 마음을 더듬어봅니다.

그리고 내가슴을 어루만져봅니다.

나도 선생님처럼 사랑의 감성을 담고 남은 시간 향기롭게 살꺼라고 다짐해봅니다.

설익은 봄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십니다.

‘ 선생님은 이 비를 보며 어떤 마음을 담았을까요?’

 

저는 꽃들의 눈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계절에 꽃을 활짝 피우고, 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압니다. 꽃나무는 피어져 있어야 아름다운 것이 아니란 것을.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위해 준비하고 갈망해온 그 과정이 아름답다는 것을..

 

미흡한 인생을 살면서도 나름대로는 세속에 물들지 않을려고 노력합니다. 그렇지만 더러운 인간욕정 때문에 때론 스스로에게 불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저에겐 선생님 당신의 깨끗한 영이 남아있기에 항상 채찍이 되고 있습니다.

선생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제 마음에 계신 선생님 꼭 꼭 한번 만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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