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책보다는 인터넷 답텐의 뉴스를 검색하며
세상을 다 아는 듯한 착각에 살고 지냈다.
모처럼 집주면 작은 도서실에서 책을 빌려 읽고 있다.
책욕심은 있어, 수시로 책을 사건만
한번 책을 읽고 나서 그 책은 집안만 채우는 도구로 전락하였다. 사치품으로 전락한다.
친구가 도서실에 근무하는데 책은 사는 것이 아니라
빌려 읽는 것이라고 하였다.
사회가 문화적 정서를 채울 수 있도록
도서실이 즐비한데 이를 이용하지 않는 것은 바보이고
그런데도 한번 읽을 책을 사서 집에 꽂아두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하였다.
처음 그말에 반말을 가졌지만 사실 한번 읽고 난 책은 왠지 버리지도 못하고 자리만 채우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새해들어 새마음다짐의 일환으로 책구입하기보다, 작은 도서실에서 소박하게 놓인 위 책을 빌리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이번주에 빌린 것이 문순태님의 "41년생 소년"이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다.1941년에 태어난 작가가 경험한 625의 아픔을 표현했다.
나도 전후 세대이지만 그래도 우리 부모님들에게 들은 아픔이 있지만, 나의 아이들은 625가 내가 느끼는 일제시대만큼 멀리와있다.
얼마전 개봉된 영화 26년, 남영동 1985도 우리애들에게서는 아무 감동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영화속 역사로밖에.. 나는 너무 슬펐는데....
나에게도 잊혀져가는 625를 한번 더 느끼고 싶어 이 소설을 빌리게 되었다.
정년퇴임을 앞둔 나(문귀남교수)는 어느 날 어릴 적 친구인 "수돌"의 전화를 받게 된다.
수돌의 전화가 걸려온 곳은 탈북자 교육소인 "하나원"이었다.
수돌은 자신의 아버지가 다른 동생인 "수천"이를 찾아달라고 부탁하고 다시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는다.
'나'는 이 전화를 통해 지난 시절 잊고 지냈던 1950년 전쟁을 겪은 시절을 떠올리고, 같은 대학교에서 이발소를 하는 같은 친구 필식이와 고향을 찾아가게 된다.
1950년 전쟁이 터지고, 사람들은 이념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나의 고향인 "안골"의 자랑이었던 세 명의 똑똑한 청년들은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수돌"역시 소년 빨치산이 되었다.열두살에 겪은 625, 무등산과 백아산 사이에 자리잡은, 나의 고향은 공비토벌작전지역이 되었다. 70여호 마을 사람들이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때죽음을 당했다. 이 작가는 실제 체험이었던 전쟁을 겪으며 이념이란 것이 얼마나 허무한 지,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누가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백아산"에만 가면 마을의 자랑이었던 청년들과 함께 그들이 꿈꾸던 낙원이 펼쳐질 줄로 알았지만 고생끝에 찾아간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좌익이니 우익이니 그런 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그에 따라 목숨이 왔다갔다 하던 50년대 한국사회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작가는 오랫동안 망각해온 무이념적 인간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해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한다. 아마 이것이 그가 이소설을 쓴 모티브라고 생각한다.
소설에서 우정을 잃어버리고 사랑을 잃어버린 소년의 아픔, 민족의 아픔을 표현하고 있다.수돌은 한 달이 지나도록 다시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수돌을 만나고 싶어 한다. 그 이유는 "소년 수돌이를 만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가 꿈꾸어온 세상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그를 기다린다. 수돌은 어떤 얘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궁금하다.
끝내 이소설은 수돌의 전화를 통해 어릴적 모습을 떠올리지만, 하나원에서 전화가 온 것으로 보아 수돌은 탈북자이기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그를 만나는 장면은 없다. 그냥 독자들과 그의 상상에 남긴다.
아마 작가는 말하고 싶을 것이다. 좌익도, 우익도 아니라 살고 싶어서 수돌은 좌익이 되었던 것일뿐이었고, 역사속에서 결국 탈북한 그가 어떤 말을 할것인가 그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과거이야기속에 그 답은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선 "좌익 이니 공산주의"를 이야기하며 빨간 완장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이 빨간색을 상징색으로 하고 있듯이..
얼마전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보여준 것처럼 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 것도 모르고 보리쌀 받아먹기 위해 보도연맹 가입서에 이름하나 적은 것만으로도 죽음의 이유가 되었다. 동생을 구하기 위해 전쟁에 간 형이 이유도 모르게 사람을 죽여 된다. 아직도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북한군의 최전방에 서게된 장동근의 이글거리는 눈이 생각한다.
배부른 자들에겐 이념논쟁을 벌이며 말다툼할 여유가 있을 지 모르지만, 그 당시 우리에겐 눈 앞의 총부리가 무서웠고, 쌀 한 톨이 아쉬웠던 것이다.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념의 족쇄에 얽매여 남과 북이 오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625는 이념의 전쟁으로 역사적 진실은 외면한 채 서있다.
몇십년전 간첩으로 처벌받은 사람들이 하나 둘 재심청구를 하여 무죄가 선고 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던 김지하 시인이 얼마전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가 젊었을 시절, 시 한수로 정치인들이 권력의 도구로 이용되었던 이데올로기에 희생되었던 시대, 그 시대의 희생양이었다.
사람들은 뒤로 가는 자동차를 타고, 몇사람이 그것이 앞으로 간다고 선동하면 이에 속아 앞으로 가고 있다고 속듯, 정치적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파놓은 음모를 칭호하고 그 음모에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했다.
울 친척중에도 625때 한글도 모르는 사람들이 멋도 모르고 공산주의자들을 따라다녔다는 이유로, 살기 위해 힘이 샌 사람들에게 자금을 되어 주었다는 이유로, 자식이 연좌제에 걸려 공직등 자리를 못했던 적이 있다. 내 어릴적 이야기다.
아직도 선거땐 잔재가 남아있지만 이제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믿지 않고 있다.
사회를 지키기 위해 이념을 사용하여 이런 안타까운 사람들을 생명과 명예를 담보로 잡아두었던 시절을 돌이켜 본다. 이젠 그런 역사를 되밟아서는 안되었으면 한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625에 대한 자전석 소설은 없으리.
지금 하나둘 새어나오는 영화, 연극, 소설이 있다.
419,516, 광주사태로 이어지는 역사의 자전석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금지곡이었던 아름다운 곡들도 리메이크되어 나오지만, 그런 좋은 곡을 품에 담아야 했던 작사가들 마음은, 가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또한 아름다운 시, 그 마음을 담은 소설작가도....
더 이상 권력을 잡으려는, 권력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나의 정신을, 나의 아름다운 마음이 담보잡혀 사는 시대는 만들지 말아야 겠다. 우리선배들이 그것을 되찾기 위해 , 그 기본적은 자유를 기위해, 그런 봄날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울었고 그렇게 아팠던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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