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만에 남편과 아이들 함께 짐을 싸서 여행을 떠났다.
늘 마음의 여유가 없어 내일, 내일, 또 내일이
몇 년이 흘러버렸다.
역시 가족여행의 진수는 라면끓여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년전 감포가는길 길가에서 끓여먹던 라면생각이
가족여행의 모티브가 되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봄휴가를 생각없이 내었다.
sandwitch day 라서
팬션, 콘도는 인터넷으로 예약이 되지 않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한 울 가족은
당일 캔슬 등으로 미련을 두었지만
인터넷으로 접수하는 콘도 등 담당자는 공휴일이라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이제 일하는 민족이 아니라 즐기는 민족이 되었나 보다.
경주는 인터넷으로 느낀 바로는
잠잘곳이 동이난것 같았다.
그래서 포항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먼저 포항 보경사로 향했다.
먹을 꺼리는 잔뜩 가지고 가는데,
잘곳이 마련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울 가족은 보경사로
한발짝 두발짝 다가섰다.
현지에서 구하려고 팬션을 훑어갔지만
방이 없었다.
보경사에 들어가서 식당겸 민박집에 몇집들렀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영 시원찮다.
급기야 보경사입구까지 와버렸다
여기에 없으면
식당위 민박을 택해야 할판
보경사 입구에
팬션이라고 되어있는데 이쁜 집이 하나 있어
전화를 하니 단체방밖에 없다고 하였다.
주인아저씨랑 나랑 반대편에서 마주하며 전화를 주고 받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 아저씨 집에서
아직 청소되지 않은 방에
민박을 하기로 하였다
아이들은 마당에 묶인 “짱구”라는 멍멍이에 눈이 박혀
그 집이 무조건 좋다고 하였다.
짱구는 나이가 8살이다.
체구는 작지만, 늙은 개였고, 름대로 영리했다.
아이들이 머리를 만져주면 발을 든다.
그러면 아이들이 발을 손으로 잡아준다
짱구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보경사 앞에서 하루 민박을 시작했다.
일단 아침에 한 밥과 더불어
라면을 끓여 맛있게 먹고
그리고 커피한잔
다시 자연과 더불어 짱구와 장난을 치다
보경사 12폭포를 향하여 산행을 하였다.
2009.5.2일 부처님 오신날이라서
입장료가 무료였다
때마침 오후 2시 내연산입구 숲속특설무대 내연산음악회를 하였다.
신록의 계절
산속에서 하는 음악회는 사람을 동하게 하였다.
아이들이랑 숲속에 자리를 잡고
봉사원들이 주는 커피한잔을 마시며 숲속에서 음악회를 들엇다.
플라멩코 댄스, 가야금 병창, 민요, 청소년가수, 트럼펫공연, 라이브가수, 통키타가수, 초청가수 . 테너, 알도색스폰 공연, 샹송, 민요, 트로트 등 여러개의 장르가 다 나왔다.
KBS 아나운서 전인석의 사회로 느긋하고 감미롭게 진행이 되었다.
송학사의 김태곤이 출연하였다. 자연의 소리를 따라 노래를 하는 가수였다. 그가 만든 피리소리는 산속의 새가 되어 지저귀었다.
눈을 감고 그의 노래를 들으니 무아지경이 되어버렸다.
너무 아름다운 소리였다 내마음이 시원하였다.
그는 말했다.
“노래하는 사람은 열을 밑으로 내리고, 노래를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영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는 램프같은 것을 들고 와 물을 부어 램프에 물을 부어 피리처럼 불어대니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의소리가 나왔다.
그는 말했다.
“ 물과 램프같은 병사이에 빈공간이 부딪혀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했다.
‘여백이 주는 소리이던가......’
우리는 코로, 입으로 소리를 낸다.
그가 품는 노래는 밑으로 토해낸다.
가슴으로 소리를 낸다.
듣는 사람은 열을 밑으로 내리고 가슴으로 소리를 듣게 된다.
더욱 산사에서 듣는 그의 노래소리는 사람의 영을 맑게 해주는 것 같았다.
신기루 같은 음악을 듣고
가족은 유명한 보경사 12폭포를 향하여 산행을 시작했다.
40분정도의 거리였다
산행이라기 보다는 산책의 느낌으로 산을 타고
폭포를 마주하고
다시 가족이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보경사 입구에 있는 온천에 가서
아들은 아버지랑, 딸은 어머니랑
육체적인 장난을 치며 피로를 풀었다.
나오니 비가 살포시 내리고 있었다.
깨끗한 몸과 마음을 갖고 민박집으로 돌아오니
짱구는 제 집에 들어가 버렸다.
나이가 많아서 일까.아직 시간은 저녁 8시 조금 지났는데..
민박방으로 들어갈려니 주인아저씨 왈
"개한테 고기는 주지 마세요 "
라고 한다.
이런 산골에서도 사료를 먹이는가
불쌍한 개...
라는 생각을 했다. 그말이 나를 서글프게 했다.
이런 산골에서도 도시의 그림자를 느꼈다.
자연이 그리워 자연으로 왔는데
그 자연집은 자연을 멀리하고 있었다.
고기를 맛있게 구워먹었다.
그리고 차한잔하고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 하다
노래방에 갔다.
누나 따라 다닌 4학년 초딩 아들은 나름대로 신곡을 멋들어지게 불럿다.
낮에 음악회에서 초딩 4학년 아동트로트가수가 부른
“무작정”을 생각하였다.
울 아들은 소녀시대의 “Gee"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수준차이는 나지만
나는 울 아들의 노래가 더 아이답게 들렸다
무작정을 부르며 넥타이를 매고 노래를 하는 스타킹 2회 출연한 아동을 생각하며 웃어본다. 내 아들 산은 자기 노래방 의자에 큰대자로 누워 잠을 자버린다.
한시간 노래하고 다시 산을 따라 민박집으로 향했다.
물소리가 폭포소리처럼 웅장하였다.
비가 많이 와서일까
캄캄한 밤중에 산에서 듣는 물소리는 오케스트라같았다.
물소리에 박자를 맞추어 다시 민박집으로 들어왔고
짱구는 잠을 자는지 제 집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민박집으로 들어와 잠을 잤다.
아직 민박철이 아니어서 청소등은 제대로 되지 않아
곰팡이 냄새가 났지만 그래도 하루를 산 이집은 나름대로 정이 갔다.
아침에 일어나 구수한 된장국에 남비밥을 해서
맛있게 먹었다.
미원이 없어도 맛있었다.
이 작은 공간이지만 나름대로는 멋진 집이었다.
다시 짐을 싸서
아이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경주월드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음식이 비싸다고 염려하면서 과자를 사가지고
경주월드에 도착했다.
그때가 2009. 5. 3. 9:20이었다.
아이들은 놀이공원 기구앞에서 머뭇거렸다.
나는 열차와 탬버린, 바이킹, 파에톤, 메가드롭이 무섭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런 무서운것은 아직 기구를 움직이지 않아
움직이는 놀이기구에 줄을 섰다.
그런데 진이와 산이는 무섭다고 안탄다고 하였다.
나는 안무섭다고 자유이용권을 끊었으니 다 타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타자고 꼬셔도 아이들은 무섭다고 타지 않았다.
어머니의 꼬득임에 아랑곳하지 않아
나는 혼자 기기를 탔다
왠지 무서웠다.
남편은 예전에 바이킹타보고 너무 놀아서 놀이기구는 이후 안탄다고 하면서 발을 뺐다.
나도 놀이기구는 잘못타는데 별로 무섭지 않은 놀이기구를 아이들과 같이 타보자고 하였는데 아무도 동조를 하지 않았다.
나는 돈키호테가 되어버렸다.
실수였다.
멋도 모르고 나는 그 놀이기구를 탔다.
무엇이 하늘을 날더니 또 사방으로 돈다.
미칠것 같았다. 계속 올라가고 돌고
바이킹은 배를 타고 위로 밑으로 왔다 갔다 하는데
이 기기는 위로 갔다가 또 스스로 뱅그르 돈다.
다시 밑으로 갔다 다시 돈다.
아아악??나는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 악몽의 시간을 이겨내고
기구에서 내렸다.
너무 힘을 써서 토할것 같았다.
힘도 없어 과자를 몇 개 먹고
내려왔다.
그것이 알고보니 무서운 “토네이도”라는 기기였다.
잘은 모르지만 경주월드에서 가장 무서운 기기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남편은 너무 웃겨서 눈물을 흘린다.
내 모습을 보면서
너무도 당당히 기기에 타던 내가
나올때는 거의 기다 시피 해서 내려왔으니깐...
그렇게 첫 번째 기기를 타고
아이들의 부축을 받고 있다가
아이들이 많이 타는 기기에 갔다.
내가 안타면 애들이 안탄다고 해서 또 같이 탔다.
별로 무섭지 않은 기기라고 생각하고
어라?
문어처럼 생긴것이 또 돌았다.
또 순간 내가 이 미친짓을 왜 또하는지 울고 싶었다.
창자가 꼬이는 것 같았다.
무서워서
그리고 또 내려왔다.
조금전에 먹은 과자가 다 튀어나올 꺼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무서움도 잊어버리고
무서워 보이지 않은 기기를 골라 타게 되었다.
나중에는 바이킹도 탔다.
지금 생각해도 토네이도는 너무 무섭다.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지옥이었다.
오후 4시 공연장에서는 아이들 춤대회를 했다.
진산이가 나가서 상을 받았다.
자유이용권 1장
'것을 또 이용할수 있으려나...'
그래도 우리 산이 용기가 대단했다.
그곳에서 햄버거와 컵라면을 사서 먹고
그곳을 나왔다.
역시 보문단지에서 대구로 가는 길은 많이 막혔다.
울 아저씨는 고속도로 주행료 내는 것을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고속도로 주행료가 턱없이 비싸고, 국도도 요즘은 길이 좋고 또 시속 80킬로 경제속도로 달리니 기름도 적게 던다고 하였다 물론 거리는 좀 멀지만 경제적이라고 했다.
정말 국도는 이전의 국도가 아니었다.
길들이 멋졌다.
국도가 고속도로같았다.
국도를 따라 이팝나무가 즐비하고,
아카시아꽃향기가 은은하게 풍겨나왔다.
이제야 고속도로가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엇다.
다시 대구로 돌아왔다.
7년살은 20년도 더된 22평짜리 아파트가 싫어 짜증을 내던 나가
집으로 다시 돌아오닌 울 집이 그렇게도 따스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하루 집을 버리고 돌아온 우리집은 사랑과 그리움의 집이었다
집을 떠나 낯선곳에서 하루 집을 자고 오면
돌아온 집은 너무 아름답다.
너무 따스하다.
이것이 여행이 가져다 준 선물인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각자의 일로 돌아간다.
산과 진은 공부, 학원, 피아노, 태권도로 바쁘게 지내교
나는 일을 해야 하고
조사연구를 해야 한다.
남편은 강의준비, 논문준비를 한다.
재밌는 휴가였다
돌아온 우리집은
궁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