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이라는 제목으로 전도연이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사실 밀양이 무엇인지 몰라 친구랑 내기를 하였다.
친구는 밀양이 “경남 밀양”이라고 하고
나는 한자로서 비밀(秘密)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내기를 하여 2만원을 잃었다.
‘무엇이 세계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받게 했을까’
그런 의구심을 가지면서 탐색을 하였다.
그래서 인터넷등 으로 찾아보니 이창동 감독이 이청준 씨의 "벌레이야기"를 각색해서 영화로 만들었는 것이다.
그리고 이청준의 이 작품은
경남밀양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유괴사건을 내용으로 작품을 썼다고 하였다.
이제야 어렴풋하게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친김에 이청준의 "벌레이야기"를 읽어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영화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해서 일단 원작을 읽어보기로 했다.
이것은 인간과 신의 세계, 지극히 종교적인 내용으로 구원과 인간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었다.
그런 내면을 “전도연”이 연기한 것이었다.
그 내면 연기에 몰입하는 것에 대해 예술적인 작품과 연기력으로 세계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은 것이다.
아직 영화는 보지는 못했다.
조만간 시간을 내어서 영화를 보아야 겠다. 이 것을 읽고 나서 다른 사람들도 영화를 본다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될꺼 같다.
“벌레이야기”는 이렇다.
남편의 관점에서 아내를 그린 작품이다.
남편은 약국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시대로 보면 80년대가 배경이 된다.
아들 일암이는 국민학교 4학년생이다.
그당시 최고의 학원은 주산학원이다.
그 시절엔 주산학원이 지금 초등학생 영어과외시키는 것과 같은 시대였다..
주산학원을 열심히 다니다 어느날 실종이 되었다.
그때가 5월초라고 한다.
거의 2달이 지나 어느날 일암이는 죽음으로 돌아오고
나중에 일암이를 죽인사람은 주산학원 김도섭으로 밝혀지고 검거된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일암이 엄마는 처음 일암이를 잃고 나서 일암이를 찾기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게 된다. 교회에 헌금도 많이한다. 돈이 주는 만큼 축복도 줄것같아서...
그렇지만 일암이가 죽어서 돌아오고 나서
엄마는 하나님을 멀리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주지 않아서이다.
그리고 일암이 엄마를 교회로 전도한 김집사는 계속 하나님만이 죄인을 용서할수 있고, 구원할수 있다고 하면서, 죄인을 용서라하고 한다.
그렇지만 용서가 되지않는다.
그런 미움으로 가슴앓이를 하다가
결국 일암이 엄마는 그해 12월23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일암이를 죽인 김도섭을 찾아간다.
감옥에 갇힌 그는 사형수이자, 아들을 죽인 사람인데
그는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엄마를 대한다.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을 영접했고, 하나님께 죄를 사함을 받았으며, 자신으로 인해 괴로와 하는 일암이 가족들이 빨리 그런 미움을 털고 하나님께 나아갔으면 한다고 하면서 성자의 모습을 보였다.
일암이 엄마는 그를 보고나서 그를 용서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를 용서할려고 찾아갔는데 그의 얼굴을 보고 나서 그에 대한 미움이 더 심해지게 되었다.
어찌하여 살인자가 평온한 모습으로 있고, 피해를 입은 자신이 그 사람에 대해 미움으로 피멍이 들어야 하는지... 어찌하여 하나님은 그 살인자를 죽인사람을 미워하는 자신에게 그 사람을 용서하라고 하는지..
일암이 엄마는 그런 신을 저주하면서 시름시름 앓는다.
김집사는 그러면서도 일암이 엄마를 계속 찾아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라고 한다.
자신이 살인자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찌 그는 하나님께 용서받고 구원받고 평온하게 죽음을 기다릴수 있다는 말인가. 세상에서 사람을 죽이고, 감옥이라는 벽돌속에 보호막을 치면서, 하나님을 영접했다는 이유로 그렇게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할수 있는가..
그리고 얼마후 김도섭은 사형에 처해졌고 그가 마지막으로 한말이 언론에 보도되엇다.
"이제와서 제가 왜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제 영혼은 이미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거두어주실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영혼뿐 아니라 제 육신의 일부는 이땅에서 다시 생명을 얻어 태어날 것입니다 저는 저의 눈과 신장을 살아있는 형제에게 맡기고 가니깐요 . 다만 한가지 여망이 있다면 저로 인하여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잇는 사람들의 영혼에도 주님의 사랑과 구원이 함께 임해주셨으면 하는 기원뿐입니다...."
결국 일암이 엄마는 사형수가 죽으면서 한말을 듣고 더 견다지를 못하고 자살해 버린다.
물론 영화에선 남편이 죽고, 일암이 엄마는 죽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고 한다.
교회에 가면 하나님을 영접하면 죄사함을 받는다고 한다.
어떤 죄던지..
하나님만이 죄을 심판할수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심판할수 없다고 한다.
물론 이 작품은 종교에 대한 반항감이 있는 글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질 때 우주의 주인일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힐때 한갓 벌레처럼 무기력한 존재일뿐이다. 그런 절망이 절대자 앞에 자신의 삶을 끝장냄으로 자신의 욕망의 한계를 나타내 보인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다.
사실 사람을 미워하지만
사실 나 자신은 어떠할까
정말 벌레같은 욕망의 덩어리이다.
그런 나 자신이 정말 타인이 저지른 죄에 대해 돌을 던질수 있을까
새삼 의문이 생긴다.
그냥 모든것이 어지럽다.
정말 신만이 모든 것을 알까
그럼 나는 무엇일까
이런 세상에 이런 아픔과 미움을 겪는데..
나는 무엇으로 보상받을까
그녀는 결국 하나님에게 도전을 한다.
생명까지 던지면서..
정말 인간은 약하다.
내가 한대 맞으면 한대 때린다.
이런 징계가 과연 맞을까
아직도 나는 분노가 가득하다.
그런데 그런 분노속에 연민이 생긴다.
나도 악하니깐.....
결국 신만이 그 것을 판단할수 있을까
한번더 생각해 보아야겠다.
그것이 나의 숙제인가 보다.
특히 나같은 경우 경찰의 업무를 하면서 죄에 대해 벌을 청구한다.
벌을 청구하면서 죄인을 대할 때 조금은 안타깝다.
정말 이 사람이 내앞에서 죄를 말하고 내가 죄에 대해 벌을 청구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
그런 의구심이 한번씩 생긴다.
특히 세상이 그 사람을 죄를 짓게 했을때 더욱 더 그렇다.
그런 모순 속에 오늘도 살아가면서
피의자신문조서 문: 피의자는.... 운운하며
답을 써내려 간다.
만약 신만이 인간을 벌할수 있다면
신앞에 나는 또 어떤 죄를 짓는 것일까
새삼 부끄러워 진다.
조금더 단아한 마음으로 업무를 해야겠다.
그 죄지은 자에 대해 조서를 작성하면서
항상 내마음이 지고 있는 나쁜 죄를 함께 되새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