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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유작시집 '버리고 갈것만 남아서 참홀가분하다'를 읽고

마루치아라치맘 2019. 1. 18. 10:11

그녀는 시인이 아니었다.

소설가 였다.

 

어릴때 일제 강점기, 6.25전쟁, 남과 북의 분열 에서

'서희'라는 여성의 일대기를 휘돌아 써내려간 장편 '토지'를 읽고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나' 탄복을 하였다.

그 글을 쓸때, 그녀 나이 43세 였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시집 마지막에 그녀의 약력을 보면서

19506.25사변 때 남편과 사별한 것을 보았다.

한말 격정의 역사 속, '토지'

그녀가 삶에서 못다한 아픔과 분노, 미련을

서희라는 아바타를 만든 것이다.

 

그녀가 돌아가시고

마지막 남긴 시 39년을 모아

딸이 발간한 유고시집이다.

 

 

소설가가 주류라서

시는 단촐한 시감은 없지만

그녀의 인생다이어리를

표현한 시였다.

시가 소설처럼 구수했다.

어머니의 품속, 고향같았다.

 

토장국냄새나는 구절 속에서

나도 따라 내 인생 달력을 펴보았다.

 

 

어릴 적 고향 마을

어머니 하늘로 보내고

시집오고 나서 느낀 친정어머니의 빈자리

첫째 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엄마없는 빈자리

하늘에 나란히 빛나는 별들을 시샘하던 그런 밤이었다..

 

그리고 아들.딸과 부대낀 시간들

더 지나면 나의 달력에는

다시 어린 손자 손녀의 그림이

병풍처럼 펼쳐지겠지

 

그녀는 1926년 태어나 2008년 돌아가셨다.

82세에 돌아가셨다.

작가는 돌아가시지 1년전 폐암으로 판정을 받고, 함암치료를 거부했다. 그녀는 마지막 죽음에 이르는 병을 진단받고

마지막 가는 길

시로서 인생병풍을 그렸다.

 

나이가 들수록

앨범처럼 눅눅한 인생달력을 펼치게 된다.

어릴 적 해가 바뀌면 1년전 다이어리를 정리헀는데

이제 매년 바꾸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앞으로는 채울 때까지

병풍처럼 연이어 써 내려가기로 하였다.

 

1년의 단절이 아니라

병풍처럼 수년이 이어지지 때문이다.

 

 

그녀가 남긴 한 소절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그 구절을 몇번이나 되새김 질한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욕망이 가득하다.

미련이 많기 때문이다.

미련을 버리는 것이

욕망을 쫓기 보다 어렵다.

 

 

정신과 의사가 말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는 생각한다.

'탐욕없는 사람은 없고, 채워지는 욕망은 없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 깊고 깊은 현대인들

대부분이 마지막엔 요양병원과 병원, 요양원을 반복한다.

그런 사람이 참으로 많다.

죽음을 마중하는 병원에는 미소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다.

 

눈에는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잠을 설친다.

아직도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삶을 희망하고

그 희망 앞에 괴로와한다.

 

그 곳에서 조차

죽음을 거부하고 있다.

 

 

'그때쯤이면 죽음을 당당히 맞이하겠지'

라고 다짐해본다.

 

'너가 막상 아프면 정말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세상과의 인연, 너의딸, 아들, 그들과의 인연을 끊을수 있겠니?'

자신하였지만

죽음의 부름앞에

인연의 끈을 지금 마음처럼

서슴없이 놓을 수 있을지

그날이 오면

나도 장담할 수 없....

 

살아 있음을 감사하고

마음껏 누려야겠다.

죽음으로 가는 병에 걸려

그길로 갈 때

그녀처럼 나도

참으로 홀가분하다고 생각하고

밎이하고자

...망한다.

 

그녀는 정말 불꽃처럼 삶속에서

사라졌다.

시집 마지막 장은

'사진으로 보는 소설가 박경리'이다.

 

그녀의 소녀시절, 서른 두살때 모습,

느즈막한 나이, 고추를 말리는 모습

농사일을 하다 지쳐 들판에 앉아 호젓이 연초를 잡고 있는 모습'

그녀의 여유있는 모습, 가식없는 웃음

까치설의 풍경이 그려진다.

 

 

올해 처음으로

시어른으로부터 제사를 물려받아,

첫 명절을 지내게 되었다.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두렵다

부대끼면 하겠지만 명절이라는 것이 이렇게 두려움으로 다가선다.

 

고해와도 같은 인생속 독백이다

 

 

 

나도 이제의 인생의 반을 돌아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섰다.

 

인생의 병풍을 그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