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도국은 이상국가일까?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부가 배를 타고 복숭아꽃이 만발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져 있는 동굴 너머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어부는 그기에서 세속을 잊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후 어부가 다시 그 마을을 찾으려 하였으나 찾을 수 없었다" 여기서 나오는 무릉도원이 바로 아시아의 이상공간이다.
우리나라에서 거론되는 이상공간 역시 무릉도원의 변형이다. 홍길동전에 나오는 율도국(栗島國)도 마찬가지이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은 율도국을 "산무도적(山無盜賊)하고 도불습유(道不拾遺)한 장소"로 표현한다. 즉 "산에는 도적이 없고, 사람들이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일조차 없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표현은 춘추시대 공자(孔子)가 노나라에서 대사구(大司寇, 현재의 법무장관)를 지낼 때 " 정치를 잘 해서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이 법을 잘 지키게 되었다"고 한데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허균이 율도국을 이렇게 표현한 이유가 무엇일까? 율도국에서는 모든 백성이 배불리 먹고 평화롭게 지내며, 건전한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율도국은 허균이 생각하고 있는 이상적 국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율도국이 이상국가인가? 단순하게 평화롭고 적서차별이 없을 뿐, 중세적 사고는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허균의 사고범위에서만 이상적 국가일뿐, 당시 모든 백성이 바라는 이상적 세계는 아니었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현대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판단하면, 이상국가에 한발짝도 다가설 수 없다.
율도국은 유교적 사고가 지배하는 철저한 봉건사회이다. 이러한 평가는 율도국에서 행한 홍길동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홍길동은 요괴에게 붙잡혀 온 미녀들을 구하고, 그녀들과 결혼한다. 아버지인 좌의정 홍문이 사망하자, 조선으로 건너와 3년상을 치르고 유해를 율도국으로 모신다. 홍길동의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효도(孝道)라기 보다, 율도국을 통치하기 위한 수단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당시 통치의 기본덕목이었기 때문이다. 율도국의 왕 홍길동은 솔선수범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으며, 스스로 유교윤리를 실천해야 백성에게 복종을 요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허균에게 율도국은 이상국가였다. 그러나 허균의 생각은 유교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율도국이 어떤 시대에나 통용되는 유토피아라고 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볼 일이다. 현존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이념과 노선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 기반하여 다양한 의견을 펼친다. 그런데 그러한 의견이 자신의 편협한 사고에서 나오지 않는지? 그리고 자신의 세대에만 적합한 주장은 아닌지? 이상은 시대에 부합해야 하며, 모든 사람이 받아들여야 추구할만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자신만의 의식 혹은 시대에 뒤떨어진 의식으로 그려낸 이상! 과연 어떠한 가치를 지닐 수 있을 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