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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여행기

마루치아라치맘 2012. 8. 19. 12:28

 

1. 출발하면서

3개월 전 울릉도 여름휴가계획(2012.8.16-8.18)을 세워 배편을 예약 하였다. 2012. 8. 16 오전 10시 포항북부해수욕장에서 경상북도 울릉군으로 출항하는 여객선 썬플라워호를 탔다. 예매시 30전에 표를 발권하여야 하는 절차를 듣지 못해 배를 타지 못할 뻔 했다. 울산에서 출발한 일행이 먼저 도착해 발권을 했기 때문이다. 울릉도의 유일한 통로인 배라서 나는 멋진 배라고 생각해서 멀미대장인 나는 멀미약을 마시지 말까 생각했지만, 혹시나 싶어 멀미약을 마시고 배를 탔다. 생애최초이자 마지막 밟는 울릉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우등실은 3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입구에 자리를 깔고 가족들끼리, 동승객끼리 이야기 나무며, 음식을 먹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들은 올 때 자리 깔고 저렇게 오자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자리를 깔고 누워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운행시간이 3시간, 파도에 따라 더 걸릴 수도 있었다. 수용규모는 920명이다. 울릉도를 가는 유일한 길인 썬플라워호는 나의 생각보다는 너무 초라했다. 멀미약을 마신 건 정말 잘한 것이었다. 3시간이상 앉아있는 자리는 너무 피곤했다.

멀미약 때문에 잠은 많이 잤지만, 불편한 자리여서 피곤함이 더했다. 다행이 파도가 잔잔해 3시간 조금 지나 내렸다. 울릉도 주민들이 필요한 물품을 이동하는 유일한 통로여서, 많은 짐들과 곁들여 1,2층 승객이 내리고 나서야 3층에서 내릴 수 있었다. 높은 곳에서 바다를 관망할 수 있는 우등실이지만, 내릴 때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빚을 갚는 듯하다. 기다리다 20분 정도 지나 배에서 내렸다.

2. 첫째날

홀로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라서 그런지 바다 냄새가 덜 났다. 다른 관광지에 내리면 요란한 상호의 호텔, 모텔 등 네온사인과 간판이 요란하다. 그러나 이곳은 “민박집”이 대세다. 간판도 초라했다. 해로가 유일한 통로라서, 물가가 비싸서 울릉도 주민이나, 여행객은 최대한 많은 물품을 구입해서 울릉도 도동항을 밟았다. 택시는 대부분 RV(Recreation Vehicle) 차량이었다.

울릉도에 사는 친구가 사정이 생겼다. 그래서 도동항 주변 식당에서 기다리며 비빔밥을 먹었다. 비빔밥이 9천원이었다. 육지보다 40% 정도 물가가 비싼 것 같았다. 3시간 이상 배를 타고 온 물품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물가가 비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앞으로의 여행경비를 떠올려 보았다.

투싼택시를 탔다. 택시요금은 구간요금이 있고 정액요금이 있었다. 요금은 어느 택시나 요금이 동일하였다. 일종을 카르텔을 형성한 것 같다. 여기에서 섬주민의 텃새를 느꼈다. 좁은 울릉도인데도 택시를 타면 기본이 만원이상 들었다. 울릉도는 육지에서 섬으로 배가 입항과 동시 하루가 시작된다. 포항에서 10시에 출항한 썬플라워호는 1시 조금 지나 입항을 하였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움직였다. 짐을 실어 나르는 화물차, 승객을 태우는 택시, 여행사의 관광버스, 부산하게 사람들은 움직이며 갈길을 갔다.

유난히 사람들의 가슴에는 독도가 많이 그려져 있다. 2012. 8. 10 우리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울릉도를 방문해서일까, 울릉도민들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오후 3시에 울릉도에서 육지로 출항한다. 그 출항을 마치면 울릉도는 바로 하루를 마친다. 하루 1번 배가 출항하고, 입항하기에 그것이 울릉도의 시작과 마침이다.

울릉도는 여기저기 공사 중이다. 경비행장이 들어선다고 아우성이고, 도로확장공사가 곳곳에 난무하였다. 이런 발전하는 모습을 보니 내생애 몇 번더 울릉도를 더 쉽게 올수 있을 거 같다.

울릉도에 내렸을 때 첫 모습은 80년대 학창시절, 남해수학여행을 갔을 때 ‘충무’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럼 30년 정도 문명의 차이가 나는데 30년 뒤는 어떨까? 그때까지 나는 살아있을까?

오후 2시경 도동항에서 점심을 먹고, 쉬다가 첫날, 성인봉에 올랐다. 오르는 코스가 여러 곳이었다. 택시기사는 안평전 코스를 안내해주었다. 택시요금은 2만원이었다. 왕복3시간반 정도면 갈 수 있다고 해서 출발을 하는데, 다른 택시기사는 지금 시간에 올라가지 말라고 하였다. 오후 4시 중학생아이들 두명이랑 40대 아줌마 2명이 산을 올랐다. 같이 온 남자들은 짐을 풀고, 울릉도 친구를 만나기 위해 남양리로 갔기 때문이다.

안평전 코스는 시간과 거리는 짧지만, 오르막길로 힘이 들었다. 운무가 가득 가려지고, 산길이 미끄러웠고, 날씨가 흐려서 땀범벅이 되었을 때, 3개의 코스가 만나는 지점에 도착했다. 성인봉이정표는 600미터를 더가야 한다고 알려준다. 남편들은 전화를 번갈아 해댄다. ‘그곳은 해가 일찍 지고, 위험하고, 119도 출동할 수 없는 지역이라 빨리 내려와라. “고 겁을 주었다. 시간은 저녁 6시반, 20분만 가면 성인봉인데, 어찌할까, 중학생 아들은 ‘대학교는 가보고 죽어야지요. 내려가요.’를 연발한다. 남편들은 부인들이 위험할까 우려인지, 배가 고파서인지 모르지만, 위험하다고 하여, 119구급대 이야기 까지 운운하여, 도저히 더 오르지 못하고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 갑자기 신령이 노하였는지 비가 내린다. 산 하늘에 텐트처럼 쳐진 나뭇잎들이 많은 양을 막아주었지만 비는 틈새로 나의 몸뚱이 전체를 적셨다. 그리고 다리도 정상이 아니었다. 성인봉을 눈앞에 두고,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성인봉을 내려왔다. 늘 안개가 끼어 있어 마치 신성의 땅인 것 같은 산이라고 한다. 그날도 산능선을 타고 올라가는 길은 전부 안개였다. 나도 신선이 되었나보다. 비 맞은 생쥐가 되어 다리를 절며 내려오는데도 기쁜 웃음소리를 내었기 때문이다.

KBS울릉중계소 쪽으로 내려왔다. 울릉도는 KBS가 하나의 이정표로 자리 잡고 있었다. 다시 택시를 타고, 안평으로 갔다. 해안도로가 아니면 굽은 산길의 도로였다. 울릉도는 배는 울릉이고, 차는 구불구불하였다. 울릉도에는 신호등이 2개밖에 없다고 하였다. 교행이 안되는 더블 굴이 있었고 그 앞에 첫 번째 신호기를 만났다. 굴 앞에 빨간 신호등이 막고, 반대쪽에 오는 차들이 신호를 받고 다가선다. 유일하게 그곳에서 교행하는 차가 부딪혀 사망사고가 났다고 하였다. 울릉도의 도로에는 승용차를 보기 힘들고, LPG 차가 없었다. 가스충전소가 없기 때문이고, 도로가 거칠어 승용차운행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겨울에 눈도 많이 오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든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며 겨울은 어떨까 생각을 해보았다. 한시간 가량이면 일주할 수 있는 울릉도를 돌며 문제를 한 개 만들어 보았다.

문: 울릉도는 무인속도카메라 가 없다?

답: 무인속도카메라 가 없다.

산길 아니면 해안도로이고, 좁은 2차로 길이 이어져 속도는 낼 수도 없는 도로였다.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내려서 바라를 바라보았다. 심해가 바로 앞에 다가선 듯 보이는 맑디맑은 바닷물은 조금 전 포항북부해수욕장에서 본 바닷물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굽이굽이 돌며 지나가는 곳에 거북을 닮은 거북바위, 사자를 닮은 사자바위, 코끼리바위, 세 개의 바위가 서 있는 삼선암, 버섯바위 등 바위가 전부 위대한 작품이었다. 울릉도를 만든 예술가의 주 종목은 바위조각인 것 같다.

안평에서 하룻밤을 잤다. 울릉도 토박이 신랑친구는 술한잔 하면서 말한다. ‘울릉도 오면 뭐하누 전부 육지에서 사오고, 육지손님 반갑지 않다.’ 울릉도 섬사람들의 고집을 또한번 실감한다.

3. 둘째날

1박을 하고 느끼는 것이 택시비가 생각보다 많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타렉스1대를 렌트하였다. 2박 3일의 짧은 여정, 해안도로를 따라 다니며 수많은 비경 앞에 서서 렌즈에 담고, 풍유를 즐기고 싶어서이다.

동해의 푸른 파도와 하늘을 보며 우리 조상들이 저 너머 일본에서 당한 치욕의 역사를 생각했다. 그 이후 같은 동포끼리 전쟁을 하여 이루어진 삼팔선, 그 울분이 동해바다가 삼키며 하얀 파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해안도로를 따라 차로 달리고, 걷는 동안 해는 우뚝 솟아올랐다. 동해의 태양이다. 친한 친구에게 카톡을 보낸다. ‘동해의 정기를 받으라고.’

성인봉에서 발원해 원시림을 뚫고 힘차게 낙하하는 3단의 봉래폭포 가는 길, 미끄럼 방지를 위해 검정고무로 된 미끄럼 방지고무가 봉래폭포앞까지 깔려져 있다. 인위적은 길을 보며, 애달파 한다. 어제 성인봉을 올라 밴 다리 알로 인해 내려오는 길 다리를 절며, 때론 뒤로 걸으며 내려왔다.

 

울릉도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상호, 나는 ‘울릉도’ 보다 ‘독도’가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정부에서 독도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가 서서일까, 독도 어린이집, 독도박물관, 독도여행사 등등……. 울릉도에서 독도의 글자를 보니 갑자기 분노가 쳐 민다. 그렇게 우리민족을 짓밟아놓고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우리 땅을 ‘다케시마(竹島)’라는 자기네들의 명칭으로 명명하며, 우리가 불법으로 점령한다는 그네들의 말, 세계 지도에 “일본해”라고 명명하게 한 그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동도와 서도의 나란한 모습을 떠올리며 우리 한반도의 아픔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은 독도를 품에 안고 싶어 한다. 독도박물관을 둘러보는 동안 가슴이 벅차올랐다. 1950년 한국전쟁의 혼란한 틈을 타서 울릉도에서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독도의용수비대’, 1953년부터 일본과 전투를 치르면서 독도를 사수하였다. 우리나라를 지켰던 독립군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었다. 중단되지 않은 일본의 야욕을 본수 있었다. 올림픽에서 보였던 일본의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가 머리에 떠올랐다. 독도의용수비대의 활약을 담은 드라마나 영화가 나오면, 제국주의 야욕을 버리지 못한 일본의 근성을 깨닫고, 한국전쟁이나, 식민지 시대를 경험하지 않은 우리의 후손들이 더욱 깊이 ‘독도’의 소중함을 가슴에 새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도케이블카를 타고 독도전망대에 올랐다. 케이블카에서는 30년 동안 불린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땅”이 흘러 나왔다. 오늘 새삼 그 노래가사가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 맞아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케이블카에 내려 바라본 독도전망대의 렌즈는 분명 독도를 바라보나 보이는 것은 운무뿐이다. 열심히 보는 동안 보이는 물체, 독도를 드나드는 썬플라워호만 보일뿐이다. 일년중 50일 정도밖에 전망대에서 독도를 볼 수 있다고 하니, 운을 타야 독도를 바라본단다.

‘오호 애재라’

 

4. 셋째날

물이 깨끗해서인가, 화장을 하지 않았는데도 피부는 한층 촉촉해져 있었다. 해안일주로를 따라 북쪽으로 갔다.

원래는 여객선을 타고 독도에 접안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독도는 너울성 파도가 심해 일년에 50일 정도만 접안하여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한다. 행운은 오지 않고, 독도에 끝내가지 못하였다. 그렇게 애타던 독도였는데, 지척에 두고 보지 못하고 돌아가려니 아쉽다. 내 생애 한 번더 올 수 있으려나.

북쪽 나리분지로 갔다. 나리분지로 가는 길, 렌터카의 내비게이션은 고무줄을 구부린 형상이다. 성인봉 북쪽 칼데라화구의 함몰로 이루어진 화구원이라고 한다. 울릉도에서 처음 보는 넓은 평야가 보였다. 비록 좁은 평야지만 울릉도에서 본 가장 넓은 평야다.

문화재로 보존된 너와집 투막집을 구경하였다. 중요민속자료 제256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었다. 허리높이의 집울타리도 정겹다. 통나무 양 끝에 홈을 파서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서로 엇물리게 포개어 벽체를 만들고, 이 위에 지붕틀을 세운 귀틀집 형식으로 지붕에 너와를 얹힌 모습이다. 너와집을 보니,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이 생각났다. 울릉도 주민들의 예전 생활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곳에 삽살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올 것 같은데 사는 사람은 없다. 도동항에서 그렇게 멀리, 거친 길을 달리며 온 나리분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필품을 구하며 살까 의구심이 들었다. 유난히 거칠고, 좁은 길을 타고 도착한 곳이기 때문이다.

울릉도는 유달리 방파제가 많다. 항구 안으로 밀려오는 센 물결을 막기 위해 무거운 방파제를 옮겨 놓았다. 그 얼마나 많은 힘과 시간, 노력이 곁들여 졌을까. ‘방파제’는 울릉도 주민의 삶의 표상이다. 자연의 거대한 힘을 막기 위해 인간이 만든 작품이다. 울릉도도동항에서 출항하는 배를 타기전 울릉도 따개비칼국수, 따개밥을 각 나누어 먹었다. 곁들인 명이, 취나물을 먹으며, 울릉도의 토속 음식맛을 음미했다.

5. 울릉도를 떠나며

2박 3일 7명의 나그네가 한마음으로 울릉도를 감상하고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 울산에서 온 부부가 우리 아이들에게 울릉도 호박엿을 사서 배낭에 넣어준다. 그 따스한 정이 달콤한 엿에 베여있다. 육지에 돌아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호박엿 한 개씩 물려주어야겠다. ‘울릉도·독도’의 관광안내 손수건, 독도박물관 책자, 그리고 나름대로 찍은 사진을 안고 다시 포항 항구에 입항하였다. 다시 대구로 돌아가 살아가야겠지. 울릉도의 독도를 느끼고, 울릉도의 생활을 느끼고, 자연의 모습을 담고 나는 다시 대구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