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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삼성맨 , 류중일 삼성감독이 되다.

마루치아라치맘 2011. 1. 19. 01:14

 

나는 76년때부터 야구를 알았다.

그때 내가국민학교 2학년때이다.

고모와 같이 살았는데 그때 고모가 야구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고모옆에서 야구 룰을 배웠다.

 

당시 고모가 좋아한 야구선수는 이만수 였던 것 같다.

그리고 장효조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80년 내가 중학생이 되었다.

당시 중,고교야구가 인기가 있었다.

지금의 프로야구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

자기 지역 중,고등학교를 응원하였으며

대구는 대구상고와 경북고등학교의 2파전이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때 였던 것 같다

서울 잠실경기장에서 봉황기 결승인지, 황금사자기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선린상고와 경기를 한 것 같다.(아님 부산상고인지 확실하지는 않음)

그때가 가을이었던 것 같다.

 

당시 류중일은 경북고등학교의 주장이었다.

류중일은 유격수로서는 고등학생으로서는 최고였다.

당시 최고의 선수를 보유한  박노준과 김건우등이 있는 선린상고였으며,

경북고등학교는 특별한 선수는 없었으며,

드러나지 않는 유격수인 류중일을 중심으로

수비위주의 팀으로 조용히 전국대회를 휩쓸던 해였다.

제대로 된 투수도 없는 팀이었다.

 

 

 

 

선린상고에는 기라성같은 투수와 타자들이 있었다.

경북고등학교는 유명한 투수와 타자는 없었지만,

전해 선린상고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해 

경북고등학교가 전국 고교대회 4대회를 우승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해 마지막 경기였던 것 같다.

 

서울의 잠실경기장(확실하지는 않음)에서

경북고등학교가 9회까지  1점을 이기고  있었다.

그리고 9회말 노아웃에 말루가 되었다.

선린상고가 공격을 하고 있었다.

믿었던 경북고등학교 투수가 차례 차례 무너지고, 더이상

경기장에 낼 투수가 없었고 수비도 흔들렸다.

 

그때 경북고등학교 감독이 구감독이었던 것 같다.

그때

갑자기  유격수인 류중일을 마운드에 투수로 교체하였다.

류중일은 경북고등학교의 간판이자, 주장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고교야구에서 있을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런 경기는 처음이었다.

류중일은 공을 던지는 투수가 아니었다.

유격수였지만, 9회말 노아웃 말루, 1점 이기고 있는 경기

어찌할수 없이 감독은  당시 주장인 류중일을 투수로 내었다.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숨을 쉴수 없었다. 투수도 무너지고 수비도 흐트러졌지만

주장이 나오자 수비수들은 마음을 다시 모았다.

류중일은 첫 주자를 삼진으로 잡고,

다음주자를 더블 플레이로 잡았는 것 같다.

아니면 거꾸로 인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9회말을 막고,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울고,

경북고등학교 선수들은 휘날래를 쳤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감동적인 경기는 처음보았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

 

유격수가 투수로 나오리라고는 상대선수들도 상상도 못했고

류중일은 공을 잘던져서 상대를 이긴것이 아니라

오직 주장이라는 힘, 그리고 그  정신으로 경북고등학교 선수들이 일체가 되어

어려운 경기를 이겼다.

그때 류중일은 정말 차분했다.

나는 그때 그 감동을 잊을수 없고

 

당시 경북고등학교 등 대구의 명문 야구선수들을 잊을수 없었다.

 

80년대

프로야구가 생기고

나는 이만수, 그리고 장효조를 좋아했다.

그러나,삼성은 이만수를 버리고, 장효조를 버렸다.

기라성 같은 삼성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해태의 감독들이 삼성의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야구를 보지 않았다.

 

고교야구때부터 영웅이었던 대구의 대표선수들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

또 이방인들이 삼성마운드를 지키고

대구의 선수들을 팔아먹자

더이상 보기가 싫었다

 

1987 류중일은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삼성에서 선수생활을 하였다.

선수생활중 한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고

 

2009년경 

삼성의 코치가 되어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류중일을 보았다.

 

 

나는 참 놀랐다.

예전 경북고등학교 때 주장으로서

9회말 말루에서 투수로 나와, 승리로 이끈 그 힘,

당시 류중일은 고교야구선수들 중 최고로 인기가 많았다.

요즘 아이돌스타가 유명한데, 그당시는고교야구선수들이 아이돌 스타였었다.

 

그만큼 경북고등학교 야구부들은 류중일을 믿었고, 류중일과 같이 마음을 모아 승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류중일의  잔잔한 미소속에, 다른 사람을 이끄는 리더쉽을 보았기에,

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다.

류중일이 삼성감독이 되면 삼성야구를 다시 보겠다고 하였다.

 

작년에

우연히 알게 된 분이 삼성야구단 후원자라고 하여서

나는 .

류중일과 양준혁 싸인볼을 부탁해서 받았다.

그때 받은 류중일의 싸인볼이다.

 

 

그런데 올해

갑자기 류중일이 삼성감독이 되었다.

 

 

나는 81년 가을(정확하지는 않음 )

류중일이 마운드에 서서

무너진 경북고등학교를 지키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류중일이 감독이 되면...'

이라고 한 것이었다.

 

류중일이가 삼성에서 20여년을 함께하고

삼성의 감독이 되었다.

남들은 양준혁이 삼성맨이라고 하지만

진짜 삼성맨은 류중일이다.

 

양준혁은 삼성을 떠나기도 했고

몇번 정도 매스컴에 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류중일은 한번도 삼성을 떠나지도 않았고

자신을 드러낸 적도 없이

고요히 삼성을 지켜왔다

그리고 대구시민을 버리지 않았다.

 

그가 7-80년대 최고의중,고교야구 영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번도 사생활의 문제 등을 드러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류중일이 보여준 감동을 보았기에

류중일이 사령탑이 된

삼성의 변화를 믿는다.

류중일이 이끄는 삼성은

예전 대구의 고교야구의 열기를 잇는

대구시민과 화합하는  경기로 부활하리라는 것을 믿는다.